현장을 흔들지 말고, 규정을 바꿔라
현장을 흔들지 말고, 규정을 바꿔라
  •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0.10.0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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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법인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지침의 유예기간이 아직 1년여가 남아 있지만, 복지현장의 고민은 벌써부터 태산이다. 대형법인들은 어떻게든 정부의 방침에 협력하기 위한 방책을 모색하는 중이고, 한국사회복지시설단체협의회 등은 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 여러 대책을 세우느라고 분주하다.

정부가 주장하는 핵심은 사회복지법인들이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겠다고 해 놓고서는 별로 책임지는 일이 없으니, 법인으로 하여금 실질적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법인의 공공성 및 책무성 강화’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워서 사회복지시설에 직접 보조하던 재정을 법인 이사장 명의의 통장에 입금하겠다는 것인데, 단순하게 들어보면 일견 타당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당사자 간의 약속이행을 실체화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이 실제로는 대단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이고, 현장의 안정성을 크게 해치는 부질없는 일이다.

우선 법인의 이사장 명의로 모든 통장을 개설해야 한다면 여러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의 경우, 그에 따른 행정과 인력의 낭비 그리고 재정사고의 발생 위험성이 지금보다 10배는 더 뛰어오른다. 또 모든 직원들의 고용계약을 이사장과 직접 해야 하며, 각 시설에서 운영하는 차량도 이사장 명의로 등록변경을 해야 한다. 수탁시설의 운영을 종료할 경우, 직원들의 법률적 신분도 어려운 문제다. 이런 일 말고도 건너야 할 강과 넘어야 할 산은 많고도 많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여러 차례 정부에 건의도 하고 토론도 했지만 정부 담당자는 ‘참고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한다고 들었다.

사실 해법은 다른 곳에 있다. 사회복지시설에게 직접 보조금을 교부하는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것을 정한 규정에서 대답을 찾으면 될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행령 제20조 정부보조금 지원대상을 ‘법인과 그 법인이 운영하는 시설’로 바꾸면 이 난리를 떨지 않아도 된다. 구닥다리 규정을 새삼 들춰내다보니 이 야단법석이 번지는 것이다. ‘한다고 했으니 해야 된다’는 고집은 웃픈 행태다. 동네 아저씨도 알만한 해법을 놔두고 애먼 다리만 긁다보니 여러 곳에서 일이 꼬이는 것이다.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해방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간다. 법조문을 내세우면서 지금까지 없던 기준을 만들려고 하기 전에, 현장이 불편하게 여기는 일을 찾아서 먼저 해결해 내는 공무원들이 많아질 때도 되었다. 아직도 해방 전의 상황이 계속되는 것 같은 느낌은 슬픈 일이다. 멀쩡한 현장을 흔들지 말고, 구닥다리 규정을 고치는 것이 바른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