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세탁소의 손님들
백영세탁소의 손님들
  • 양동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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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칼럼니스트 직접촬영사진
@양동훈

여러분 혹시 백영세탁소를 아십니까?
갑자기 무슨 황당한 질문이냐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백영세탁소는 경상북도 문경시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40년 된 세탁소입니다.

사실은 본 칼럼을 쓰는 필자의 장인어른께서 평생 일하고 계시는 3평 남짓한 노포입니다. 갑자기 시골마을의 한 세탁소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이 작은 공간에서 발견한 사람살이의 모습이 우리 사회복지 현장에 주는 깨달음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화창한 봄날, 오랜만에 처갓집을 찾았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늘 딸과 사위 그리고 손주들이 올 시간이면 세탁소 앞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늘 화분으로 맡아두시는 편입니다. 오늘은 만개한 수국이 심겨진 화분이 저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장인어른께서는 늘 같은 위치에서 창밖을 바라보시며 옷을 다림질하고 계십니다. 40년째 같은 자리에서 변한 것은 딱히 없지만 주인장인 장인어른만 나이가 점점 들어 이제 팔순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세탁소에도 한해살이의 생애주기가 있습니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 한복을 세탁하고 수선하려는 손님들이 많아지고, 봄학기가 다가오면 교복을 세탁하고 수선하려는 손님들이 많아집니다. 또한 설 명절과 학기 초가 지나 여름냄새가 날 때면 비로소 겨울 옷들이 여름 잠을 자기 전에 깨끗하게 목욕이라도 해야한다는 듯이 세탁소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또 다시 가을학기가 다가오고,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다시 겨울이 시작됩니다.

처갓집 방문에서의 루틴은 장모님은 딸과 손주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고 저는 대개 세탁소 안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장인어른의 다림질 솜씨를 구경하는 것입니다. 겨우내 묵었던 겨울 옷이 한창 세탁되고, 건조돼 다림질 되는 현장에서 무심코 쳐다본 세탁물에는 장인어른께서 손수 달력종이를 오려서 만드신 꼬리표가 하나씩 실에 달려 있었습니다.

* 출처 : 직접촬영사진
@양동훈

다정식당, 건강약국, 개포곶감, 승창빌라...

주문번호도 아니고 고객의 이름도 아닌 낯선 꼬리표를 보면서 백영세탁소를 둘러싼 이웃들의 사람살이의 모양새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고객의 이름, 핸드폰 번호 하나 남기지 않아도 다정식당 사장님, 건강약국 약사님, 개포면에서 곶감 만드는 아저씨, 승창빌라에 사는 아주머니로 서로 통하는 그들만의 신뢰와 흘러넘치는 정감을 느꼈습니다.

바로 아파트 옆집에 사는 이웃과도 제대로 인사하지 않고 지내는 현대도시의 삶과 비교해볼 때 아직도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는 어쩌면 사회복지현장에서 추구하는 공동체성이나 사람냄새 나는 신뢰와 존중이 이미 오래전부터 깨지지 않고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본래부터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이런 사람살이의 모양새를 많은 사회복지인들은 어쩌면 인위적으로 회복시키고 활성화시킨다는 명분 아래 서비스로 만들고 프로그램화 해서 개입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몸 담고 있는 현장과 지역사회에서 본래 가지고 있었던 숨어있는 사람살이의 모습들을 잘 발견해내고 그것을 회복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일에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의사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일이 바로 우리 사회복지인들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백영세탁소의 손님들, 어서 옷 찾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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