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커뮤니티케어 : 지역에서 함께 소통하는 AAC마을
진정한 커뮤니티케어 : 지역에서 함께 소통하는 AAC마을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0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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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가 된 기분

여러 기관을 방문해서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AAC)을 설명하다 보면 공통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

그중 하나는 CCN(Complex Communication Needs: 복합적인 의사소통 요구)을 지닌 사람들에게 의사소통 도구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장애인들은 보통 혼자 오지 않고 보호자나 활동지원사 등 누군가와 함께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같이 온 분이 대신 대답을 해 주시기 때문에 이런 의사소통 도구는 잘 사용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책에서 읽은 Rick Creech 사례가 떠오른다. 뇌병변장애인인 Rick Creech는 파티에 참여했는데 주위 사람들은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그와 대화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Rick Creech는 본인 스스로가 파티장에 있는 하나의 가구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CCN을 지닌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태도나 지식 등에 의해 보이지 않는 의사소통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AAC마을, 마을, 지역사회 참여, 그리고 사람중심실천

CCN을 지닌 사람의 대화 상대자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담당 사회복지사, 치료사, 또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CCN을 지닌 사람들 대부분은 대화 상대자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의사소통과 참여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완전히 통합되는 것이 필요하다.

Beukelman과 Mirenda에 따르면 CCN을 지닌 사람들이 긍정적인 역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지향의 지원 모델(Community-Referenced Support Model)에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CCN을 지닌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참여가 늘게 되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할 수 있고, 다양한 주제로 의사소통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AAC마을에서는 AAC ZONE의 점주, 주무관, 경찰관 등은 의사소통 권리를 이해하고 AAC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분들은 CCN을 지닌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의사소통 그림판으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 등 CCN을 지닌 사람들은 성공적인 의사소통 경험을 하게 된다.

CCN을 지닌 사람들은 AAC ZONE에서 본인의 의사소통 수단을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비치되어있는 의사소통 도움 그림 글자판을 선택하여 사용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장애인복지 관련 기관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중심실천(Person-Centered Practices: PCP)과도 맞닿아 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삶은 타인이 결정하는 삶이 아니라 장애인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삶으로써 ‘의존이 아닌 자립’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 내 살아가는 장애인에게는 일상 활동에 직접적으로 유용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 구축과 경험들이 곧 서비스를 받는 삶에서 커뮤니티 삶으로, 목적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 생각된다.

자연스럽게 구축된 취약계층을 위한 코로나19 AAC 네트워크

각 지역에서 AAC마을사업을 하고 있는 AAC마을지원기관은 자연스럽게 취약계층을 위한 코로나19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실제 예로 보건복지부에서 선별진료소와 예방접종센터에 의사소통 도움 그림 글자판과 시각 지원판을 배포하였다.
AAC마을지원기관들은 공백이 없이 촘촘하게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선별진료소와 예방접종센터에 환경을 조성하고 실무진들을 교육하였다. 또한 그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장애인들과 보호자들에게도 적절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다.

의사소통 도움 그림 글자판과 시각 지원판은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 외국인 등 취약계층에게도 과정을 쉽게 안내하고 이해할 수 있었으며, 현장에서 AAC를 알리고 지역 내 보급의 필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의사소통 도움 그림 글자판과 시각 지원판을 활용했던 선별진료소나 지자체(경기도에는 안산시, 부천시, 용인시 등)는 예방접종센터를 준비하면서 그 지역의 AAC마을지원기관에 먼저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하였고 AAC마을지원기관은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는 등 실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선경(단국대 특수교육대학원 겸임교수 / 언어치료 AAC센터 '사람과소통' 대표)
한선경
(단국대 특수교육대학원 겸임교수 / 언어치료 AAC센터 '사람과소통' 대표)

상호작용의 시작 눈 맞춤(eye contact), 변화의 시작

최근 많은 기관들이 지역사회에서 CCN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AAC마을 사업을 실행하고 노력하고 있다. 담당자가 자주 바뀌거나 갑작스럽게 코로나19가 확산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발견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변화 중 작지만 중요한 것은 CCN을 지닌 사람들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빈도의 증가이다. 의사소통은 눈 맞춤을 포함한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다. AAC ZONE의 점주, 주무관 등은 CCN을 지닌 사람들과 같이 방문한 보호자가 아니라 CCN을 지닌 당사자를 바라보고 의사소통 도움 그림글자판을 펼치며 의사소통을 시작하고 있다.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면 연인이 된다는 나태주님의 시처럼 CCN을 지닌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바라보며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곧 우리가 바라는 커뮤니티케어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