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현장의 겸손은 '정치적 당당함'이다
사회복지 현장의 겸손은 '정치적 당당함'이다
  •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1.07.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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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장은 ‘겸손’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래서 모든 직원들이 몸과 마음에 겸손을 달고 다닌다.

그러나 겸손이 무조건 자기를 낮추는 것으로 강요되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를 위한 집단행동이나 정치의 장에 참여하려는 행동을 궤도이탈로 보는 것도 갑갑하다.

실제로 사회복지 현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의 아픔을 겪어왔다. 되바라진 행동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무덤덤함을 겸손이라고 말하는 이도 보았다.

어쩌다가 사회복지 현장이 이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둔감해졌는지 모르겠다.

오늘의 현실은 우리 살점이 떨어져나가는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가깝다. 열심히 일하고도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다. 사회복지사의 정치활동이 투표에 그쳐야 한다는 묘한 경계선을 그어 놓고 있다. 그 선을 넘으면 사회복지의 본연을 넘은 일이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사회복지 현장에 있으면서 정치적으로 예민한 말을 하거나 글을 내놓으면 이단아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겸손하지 못한 강성인물로 기피대상에 오른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일만 열심히 하라는 불편한 전통이 만든 기형적 현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모든 사회복지 현장이 떨쳐 일어나 정치적 발언의 강도를 높이자는 말이 아니다. 모두 정치의 장에 뛰어들거나 정당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거캠프를 기웃거려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삶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점과 우리 선택의 상당부분이 정치적 판단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따라서 사회현상에 대한 정치적 민감성과 권리로서의 정치행동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사회복지 현장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겸손한 일이다. 사회적 약자를 높이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겸손이 정치적 무관심은 아니다.

겸손이 비굴의 다른 이름이어서는 안 된다. 겸손이 야바위꾼들에 의해서 수시로 추행 당하는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다. 겸손이 부당한 대우를 참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겸손이 무작정 수용이나 무분별한 이해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지만, 거짓을 숭상하지 않는다. 겸손은 바름을 올려 세우지만, 바르지 못함은 내치는 역동이다. 겸손은 거스름이 없는 태도다. 동시에 사악한 무리들에게는 준엄한 꾸지람 그 자체다.

사회복지 현장은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자포자기가 겸손은 아니다. 사회복지 현장의 겸손은 사회적 올바름이요, 심리적 넉넉함이요, 정치적 당당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