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예술가를 위한 스튜디오 지원이 필요하다
발달장애 예술가를 위한 스튜디오 지원이 필요하다
  • 이지혜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강사)
  • 승인 2021.09.2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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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예술인을 위한 현실적인 지원 방안의 마련은 쉽지 않다.

자발적으로 예술 작업을 지속하는 발달장애인이 소수이기도 하고, 발달장애 예술가 지원 노하우를 축적할 현장이 불안정하게 유지되는 까닭도 있다.

발달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와 발달장애 예술가 지원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권 사업은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에 치우쳐 있다.
사업 프로그램 참여자는 기존에 이미 예술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인 경우가 많다. 반면 문화예술 접근성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들은 전문화된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조차 얻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작가들이 대부분 제도권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정보 접근에 용이한 이들로 사업 참여자가 한정되고 새로운 이들의 유입이 제한된다.

이런 현상은 비장애 작가 지원 프로그램과 비교해 봐도 문제가 드러난다. 공적 영역에 위치한 상위기관의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 체험을 중시하는 차원에 머무르고 미시적인 역할로 수행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이마저도 발달장애인에게는 한정된 지리적 요건 때문에 접근이 원활하지 않고, 생활에서 도움을 주는 이들이 발달장애인의 욕구를 파악해 모든 제반 사항에 대한 지원을 꾀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따른다.

다시 말해 발달장애인이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활동하기 위해서는 비장애 예술인이 거치지 않아도 되는 보이지 않는 관문을 수없이 통과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라면 누구라도,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서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발달장애 작가들의 예술 활동은 ‘장애를 극복하는’, ‘사회의 장애인식을 개선하는’, ‘돈벌이가 될’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작가의 작품과 작업할 권리를 보장하고, 작품에 깃든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플랫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안정된 플랫폼은 예술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력이 상주하는 공용의 창작 스튜디오를 말한다. 스튜디오는 작가의 개인 작업실 겸 예술인으로서 사회와 연결되는 장이다. 이는 이동이 제한적인 예술가들을 위해 지역마다 소규모로 위치하는 것이 좋으며 작가가 원할 때 접근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 작가의 권리 보장, 작품의 보존과 연구, 예술 활동의 지속 등 작가 지원에 있어 스튜디오의 역할은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작가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거처라는 점이다.

작업이야 작가의 자발적 의지로 행해지는 일이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발달장애 작가가 건너야 하는 관문은 도처에 산적해 있다. 한동안 주목을 받으며 활동하던 작가도 예술 행위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있으면 작품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하거나, 같은 활동을 하는 집단과 생활을 공유하지 않으면 작가는 작업에 대해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스튜디오의 부재는 작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창작주기별 작가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사례연구가 불가하다. 스튜디오는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나의 작업 행위를 예술로서 존중하는 동료들로부터 심적 안정을 얻는 기능적 측면이 있다.

영국의 신경의학자이자 박물학자인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1933-2015)가 말한 ‘잠복기 Incubation period*’를 가능하게 하는 것 또한 스튜디오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처럼 작가들에게는 어떤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함양하고 실험적인 예술가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보호와 환대의 토대가 필요하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국내 발달장애 예술인을 위한 공적 영역의 지원은 최근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의 욕구를 수반하고, 투자된 경험을 누적할 수 있는 현장은 실로 부족하다.

2020년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제정되었고, 지난 8월 예술인들의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었다. 국내에도 많은 민간단체와 스튜디오가 생겨났지만, 작가들의 작업 환경이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에서 공공은 온당한 역할을 찾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지역마다 다양한 운영 형태를 가진 스튜디오가 개설되어 있다. 예술가에 의해 운영되는 단체도 있고, 법인의 산하의 시설인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독일 스튜디오는 공공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지원중단의 불안 없이 운영되고 있다. 기초 운영의 안정적인 상황은 재정마련을 위한 개별 사업에 인력을 투입할 수 있게 했다. 특징적인 점은, 지역마다 뿔뿔이 흩어져 있고 저마다의 방식과 운영철학이 상이한 스튜디오들의 협력을 돕는 거점기관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거점기관은 지원 주체인 상위기관과 개별 스튜디오 사이에서 각 스튜디오의 예술적 역량을 강화하고 현장의 전문가들이 활발히 논의할 수 있도록 매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지혜경희대학교 미술대학 / 강사
이지혜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 강사)

각 지역의 스튜디오가 한자리에 모여 아젠다를 세우고 포럼을 개최해 운영, 사업, 교육, 예술 담론 등의 논의를 이어간다. 이외에도 스튜디오 외부의 다양한 예술가를 만나게 하고, 자립방안이나 지역에서의 역할을 모색하기도 한다.

작가가 발달장애인이라서 제한적인 환경에 고립되어 있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진 열정과 재능을 지원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민간의 부족한 역량을 대신하고 경쟁을 부추기며 이행을 위한 사업에 골몰하는 공공-목이 마른 시민에게 생수를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공공에서만 할 수 있는 토대의 마련-도시에 수도시설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 잠복기 Incubation period

: 진정한 독창성은 의식적인 준비와 훈련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준비도 요구하는데, 무의식적인 준비가 진행되는 과정을 잠복기라한다. 잠복기는 가용 자원과 영향력을 잠재의식 속에서 통합하고 소화하여 자기 자신만의 뭔가로 재조직하고 합성하는데 필수적이다. 올리버 색스 저, 양병찬 역, 의식의 강, p.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