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복지 실천전략 하나, '잘 얻어 먹기'
마을복지 실천전략 하나, '잘 얻어 먹기'
  • 김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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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얻어만 먹어도 관계가 쌓이고, 주민의 역할이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복지기관에서 재가복지사업과 사례관리를 담당할 때가 생각난다.

후원물품을 나누거나 사례관리 상담을 위해 집에 찾아가면 누구랄 것도 없이 "커피 한잔 하고가", "이거라고 마셔", "줄 건 없고 이거라도 가져가" 라며 커피나 음료, 물, 사탕, 요쿠르트, 과자 따위를 손에 쥐어 줬다.

처음엔 '받아도 되나?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왔는데...'라는 생각으로 극구 사양하거나 물이나 한잔 마시는 정도로 하고 급하게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간혹 받아 들고온 요쿠르트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이어서 이걸 마셔도 되나 싶은 마음에 싱크대에 버렸던 기억도 여럿이다. 

마을에서 활동을 하는 것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마을 경로당에 인사드리러 가거나, 집에 방문할 일이 있어 가면 주민들은 그냥 보내지 않는다.

"내 정신 좀 봐 커피 한잔 해야지?", "밥 먹고가",  "이거 먹어" 라며 커피는 기본이요, 상다리가 휘도록 밥을 차려 주거나 두 손 가득 무언가를 들려 보내려고 한다. 

복지관에서의 나와 마을살이를 하는 지금과 달라진 것은 넉살좋게 앉아 주는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두 손 가득 준 먹을거리들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다른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어르신께서 타주신 냉커피
어르신께서 타주신 냉커피

처음 복지를 시작할때는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의 전문적 관계 내지 경계, 전문가로서 사회복지사의 자세와 역할 등에 더 많이 신경을 썼던 듯 하다.

지금은 주민과의 관계, 주민들의 자존심과 자존감, 주민들의 역할 등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식구라고 했다.
같이 밥을 먹고 사는 사람, 조직에서 같이 일을 하는 사람 등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만큼 같이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친밀감의 표현이요.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마을복지(사회복지)는 관계지향적이다. 함께 무언가를 먹으며 관계가 쌓이면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들도 늘어난다.

거절이 미덕인 줄 알았다. '없는 살림일텐데 내가 받아도 되나? 나보다 그분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없는 살림엔 나누면 안되는 것일까?

주는 손을 무안하게 하면 주는 사람이 민망해진다. 친밀감의 표현으로 또는 '이정도는 나도 줄 수 있어', '방문해줘서 고마워', '좀 더 시간을 보내고 가' 등등의 표현으로 커피며, 과자 따위를 나누는 것일 수 있는데 그것을 거절하면 그분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좋은 마음으로 한 거절이 그분의 자존심,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것일 수 도 있겠다. 자존감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할 것이 아니라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그분들의 자존감을 세워드리고, 품위를 지켜드리는게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어르신께서 차려주신 밥상
어르신께서 차려주신 밥상

주민들에게 일부러 음식이며, 먹을 것을 나누는 역할을 부여하기도 한다.

마을경로당에 갈때, 농활팀이 왔을 때 밥을 차려 달라고 하거나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밥을 달라고 하면 힘든 몸을 이끌고도 기꺼이 차려 주신다. 반찬은 없지만 많이 먹으라며 온갖 김치며, 텃밭의 푸성귀나 냉장고 속 재료들로 한상 거하게 차려 주신다.

경로당에서 티비만 보거나 집에 할 일 없이 누워 있다가 밥을 차려달라는 말에 해야할 일이 생긴다. 몸을 움직일 명분과 나도 보탬이 된다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내가 한 마을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눌 수 있고,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는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이유가 증명될 때 더욱 살아갈 맛이 난다.
소위 클라이언트라고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그분들이 삶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거들고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 아닐까 싶다. 잘 얻어 먹는 것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거창한 마을복지(사회복지)의 기술이나 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잘 얻어먹기' 전략만 잘 실천해도 반은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