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책방을 만들다1
마을에 책방을 만들다1
  • 김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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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케렌시아에서 우리의 케렌시아로 확장하는 변화를 경험하다

책방을 만든 이유

2018년, 마을에 책방을 만들었다.

<트렌드코리아 2018, 김남도외(2018)>에서 2018년 소비트렌드를 전망하면서 등장한 ‘나만의 케렌시아(Hide Away in your Querencia)’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케렌시아’는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는 투우사도 소를 건들이지 않고 스스로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는 혼자만의 휴식처를 원한다.
책방의 시작은 ‘나만의 케렌시아’를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의 출발에서 부터였다.

집이나 일터가 아닌 내 몸과 마음을 편히 뉘여 쉼을 가질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에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책방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됐다.

언젠가 "마을에 책방이 없다는 것은 마을에 책 읽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난 마을주민들 중에 책을 가까이 하는 분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집에서 책을 보기도 하겠지만 나이가 들고 농사일에 바쁘다 보면 책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을에 책방에 있으면 그래도 오가다 한번은 들러 책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주민들과 방문객들의 책 읽는 문화가 만들어 졌으면 했다. 쉬이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시나브로 해나가 보려고 마을책방을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하려 했던 책방이 사회적 이유로 확장되었다.

마을책방 문을 열다

마을책방의 오픈일은 4월22일, 내 생일로 잡았다.
처음에는 무언가 공간을 좀 정리해 놓고, 책방다운 모습을 갖추고 나서 오픈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마음만 먹고 있으니 실행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오픈을 하고 나면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던 내 생일 첫째딸 소율이와 가서 조촐하게 책방을 정리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마을책방 오픈 소식을 알렸다.

책방이라 이름 붙였지만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책을 좋아 하는 분들이 그냥 책과 함께 하는 공간이면 족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이라 명명해도 되겠지만 도서관은 괜히 딱딱하고 조용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방은 좀 더 정겹고 친근한 느낌이라 책방이라 부르기로 했다.

마을책방
마을책방

책방 안내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책을 보시고 두권책방 두노마점에서 추천하는 책이나 그 밖의 책을 조금 더 읽고 싶으신 분들은 가져 가져 가셔도 됩니다. 책을 가져 가시는 분들은 자율적으로 책방운영을 위한 후원금을 내주시면 됩니다. 정가에 상관 없이 자율적 후원입니다. 집에 보던 책이 있거나 한번 보고 읽지 않지만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으신 책이 있으면 가져 오셔서 책방에 있는 다른 책들과 교환해 가셔도 무방합니다. 마음껏 자율적으로 이용하시면 좋겠습니다.’

책방은 내가 계속 상주하거나 누군가 계속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인으로 운영했다.

마을책방이 문을 열고 나니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책방을 열고 하루만에 누군가 와서 몇권의 책을 책방에 기증해 주고 갔다. 예전 복지관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와서 책방에 꽃꽂이도 해주고 현판도 정리해 주고, 사진도 걸어줬다. 선물도 사가지고 왔다. 냉장고가 후원이 들오기도 했다. 마을에서 회의가 있을 때 회의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책방에 같이 모여 영화를 보기도 했다. 방울토마토며 꽃가지들이 책방에 하나둘 자리하기 시작했다.

책방에 들어온 후원품
책방에 들어온 후원품
책방에 들어온 후원품
책방에 들어온 후원품

마을에 학생들도 오가다 관심을 보이고 들어오기도 하고, 책방에 있는 책을 가져가 봐도 되는지 문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마음껏 와서 쉬고 놀고 읽고 가라 이야기 했다. 전국각지에서 사회복지사들이 방문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지속적으로 책방사진을 올렸더니 김제시 관광을 홍보하는 영상에 책방을 소개하고 싶다고 와서 영상을 찍어 가기도 했다. 영상이 공개되자 더 많은 분들이 책방에 찾아 주었다. 작은 공간을 마련하니 마을에 큰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책방 한켠에는 마을작은점빵을 마련했다.
마을에 슈퍼가 없어서 과자 등을 사먹으려고 큰길가의 편의점을 가거나 멀리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책방에서 주전부리를 하고 싶을 때 옆에 있는 점빵의 물건으로 요기 하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작은점빵을 마련한 것이다.

점빵의 공간만 마련했는데 공간이 비어 있으니 방문하는 사람들이 음료며, 과자, 라면, 커피 등을 사가지고 와서 가득가득 채워주었다. 이 점빵도 무인으로 운영되는 자율적 공간이다.

마을작은점빵
마을작은점빵
마을작은점빵
마을작은점빵

점빵이 생기고 나니 무엇보다 기뻐한 건 마을의 어르신들과 아이들이었다.
마을책방에서 공예프로그램을 하고 나서 자연스레 점빵에 있는 간식으로 요기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책방과 숲놀이터에서 활동하며 점빵에 있는 맛있는 과자들과 음료로 간식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점빵의 물건들은 화수분처럼 비워지면 채워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공간이었다.

책방은 나만의 케렌시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나의 케렌시아를 넘어섰다. 마을책방은 주민들과 외지인들에게도 쉼과 안식의 공간, 놀이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나만의 케렌시아가 우리의 케렌시아로 진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