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이 아파야 사회사업가의 마음은 평안하다
발바닥이 아파야 사회사업가의 마음은 평안하다
  • 홍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7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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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인사하는 것이 지역사회로 들어가는 첫 걸음

인사드리기

물리 용어 중 '임계점'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온 상에서 고온 상으로 상변화(相變化)를 할 때 저온 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한계 온도와 압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계온도와 압력인 임계점을 지나면 액체는 기체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회사업에도 이러한 임계점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역사회가 낯선 사회사업가를 익숙함으로 받아들이는 시점 말입니다. 사회사업가와 지역사회가 서로 어울리는 시간이라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점은 개인마다 매우 다르기 때문에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임계점이 지날

 

때까지 지역사회에 지속적이고 동일한 에너지를 전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지역사회 들어가는 첫걸음은 기도와 인사였습니다. 지역사회로 들어가기 전 기도했습니다. 지역의 생태와 내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기를, 좋은 이웃 만나기를, 작은 일에도 성의를 다하여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들어간 후 맨 처음 한 일은 ‘인사’였습니다. 인사는 서로의 생태를 연결해주는 마법의 고리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마음으로 인사드렸습니다. 커다란 명함 들고 통·반장, 지역 유지, 지역 어른 그리고 지역 상점, 종교 시설, 학교, 시민사회단체, 관공서 등에 찾아가 인사드렸습니다. 새삼 깨달았지만, 이때 가장 많은 힘이 필요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낯선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아 더듬거리고 어색한 시간이 흘러 진땀 흐르는 상황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잡상인 바라보듯 나를 대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그럴 때면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사회사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 지났어도 여전히 사람 만나는 친화력을 얻지 못했구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지요.

그럼에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서로에게 연결 지어지는 과정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 달리 특별한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땅에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 없다면 열매 또한 자라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사회사업도 농사일처럼 땅에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의 시작은 인사였습니다.

꾸준히 인사드리면 관계가 무르익어가는 시간이 있음을 확신하였기에 인내심을 가졌습니다. 언젠가 인정이라는 씨앗의 열매가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주 인사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한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꾸준히 인사하니 인사를 받아주는 동네 이웃이 늘어갔습니다. 좋은 일 한다며 커피 타 주는 미용실 사장님, 고생한다며 사과 내어주는 어린이집 원장님, 지역 정보를 자세히 말씀해 주는 부동산 사장님,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돕겠다던 장난감 공장 사장님, 고생한다며 부침개 부쳐주시는 동네 어르신.

동네 곳곳 꾸준히 인사드리니 경계는 줄고 사귐이 늘어갔습니다.

희망이었습니다. 백 명의 사람에게 인사드려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런데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생태가 어울려 감정이 연결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희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희망이 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했습니다.

사회사업가의 원동력은 여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말입니다. 10년 전 사회사업을 시작하며 느꼈던 첫사랑 같은 두근거림이랄까요? 발바닥 닳도록 동네 곳곳을 누비며 인사드리니 잠자고 있던 복지 본성도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역시 사회사업 본성을 깨우는 일은 발바닥을 고되게 해야 합니다. 발바닥이 아파야 마음이 평안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렇게 지역사회의 시간과 내 삶의 시간이 공존하며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